9월 연주가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추억이 되었다.

연주가 끝난 후에 자신의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연주 다닐 때마다 사진도 별로 찍지않고, 녹음도 꺼리던 내가

우리 카페를 위한 음원, 영상자료를 구해 드리면서 듣고보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닫게된다.

작년에 쿠이켄 선생님이 이년에 걸친 스케줄을 주시면서 한국연주를 기쁘게 맞아주셨을 때,

올해는 오케스트라 규모이던지 아니면 셋이서 하는 연주회로 하자고 하셨는데,

오케스트라 규모의 연주가 여러가지로 너무 부담이 커서 셋이서 하게 되었다.

벤자민의 스케줄은 애초부터 연주 전날 밤 늦게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젊으니까 괜찮을거야..." 라고 하셨다.

만약 비행기가 연착한다거나... 리허설 시간도 없이 너무한데....

생각은 했지만,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편안하게 말씀을 하셔서

그냥 벤자민의 '젊음'에 의지하기로 했다...

업데이트 된 프로필이 너무 늦게 올라가긴 했었지만

애초부터 한국 연주자 김윤경씨와 한 곡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께서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우리 넷이서 이번 연주의 팀이 되었다.

스위스에서 리사이틀을 한 후, 어찌어찌 연결 편을 타고

벤자민은 연주 전날이 아닌 연주 날 오전 1시경 호텔에 도착했다.

연주 당일 오후 1시부터의 스케줄이란...

1시에 쳄발로 연주장에 입장.

벤자민이 악기상태 점검, 조율.

거의 세시가 다되어 리허설에 들어갔다.

중간 중간 음향 체크, 위치 조절,

저녁 식사도 간단히 대기실에서 하고...

아직 더울 것같아서 미국에서 하나 들고 온 윗도리에 맞는 긴 치마가 없었다.

아는 분이 급히 만들어 연주회장으로 가져다 주셨는데, 그 윗도리와 치마사이가 붕 뜨는 것이었다...

너무 마른 사람이 통통해 보이기 위해 디자인 한 것같은 ,

내가 가야하는 방향과 정 반대의 현상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궁여지책으로 가지고 있던 까만 긴 줄 목걸이를 치마 허리에 달아야겠다고 생각.

연주 직전에 시간 내어 하고 있던 작업은 바느질이었다...

너무 비대해 보이지 않도록... 시선을 분산시켜야겠다고....

목걸이를 바늘로 찔러 쑤셔 바느질을 하면서.... 참 스스로 한심했다.

작년 독주회에 입었던 자줏빛 투피스는 각각 다른 매장의 아울렛에서 구입한 캐주얼 의복에

전에 다른 옷에 붙어있던 까만 레이스를 주렁주렁 꿰메어 달아 입었는데...

왜 옷하나 해결을 제대로 못할까...생각도 들면서....

그렇다고 현란한 드레스는 딱 질색이라... 비싼 옷을 맞추어 입는 것 또한 체질에 맞지않고...

그런대로 하다보니 또 재미가 있었다.

연주는 정말 많이 즐겼다...

그리고 스스로의 연주에 대해서도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다.

음악과 나사이,그리고 관객과 나 사이에서 얻은 깨달음은 다음 연주를 위한 활력소가 될 것이다.

벤자민과 시기스발드 선생님의 바위처럼 견고하고, 살처럼 편안한 그 자연스러움...

윤경씨의 이지적인... 쟁이님의 작품인 악기가 또한 내 악기와 너무 음색이 잘 어울려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이번 연주기간을 돌아보며 또 다른 추억과 교훈이 된 두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본다...

첫째, 연주 전 일주일 동안에는 딱지놀이를 하지말것.

이번에 처음으로 화려하게 변신된 딱지를 보게되었다.

엣날에 가지고 놀던 딱지는 종이를 접어서 통통하게 만들어 푹신푹신한게

때리면 뒤집어지기 쉬운 그런 정다운 딱지였는데...

색색으로 그림도 현란하게 변신해버린 작은 딱지들을 보고 아들 애반이랑 같이 여러개를 사서 놀았다.

정말 어려운 놀이가 되어버린 딱지...

뒤집힌 상태의 딱지를 뒤집은 딱지로 모서리를 때려야 잘 뒤집힌다는 사실을 알게되기까지,

처음에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딱지치기 놀이는 급기야 온 힘을 다해 사정없이 내리치며

둘 다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경지에까지 가게되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치다보니 오른 팔을 올리기가 거북할 정도로 팔이 아팠다.

그 후 이틀 정도 연습에 무리가 갈 정도였다...

그래서 딱지놀이는 연주 직전에는 절대로 하지말아야 한다는 것.

일 주일 이전에 하더라도 될 수있으면 왼손으로 칠 것.

활이 부들부들 떨리면 할 말 다 한 것아닌가...

둘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는 꼭 층수를 다시 한번 확인할 것.

7살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소꼽장난 시절부터, 사춘기 소녀시절을 지나 강산이 몇번 변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점 변함없이 제일 친한 내 친구.

다정하기 그지없고, 서로 너무 다른 게 또한 그지 없는,

나보다 더 나를 위해 눈물 많이 흘려주는 친구.

그 친구 생일에 너무나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도무지 마땅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무엇을 사도 다 부족할 것같았다.

그래서 결국 생각한 것이...

예쁜 작은 부케와 예쁜 작은 케익과,

그리고 바이올린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침일찍 그 친구 집으로 출동.

내 생각에 스스로 흥분해서 택시에서 내리자 케익상자와 부케를 들고 바이올린을 메고 가방은 등에 짊어지고

부랴부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향해 들어갔다.

막 문이 닫히려는데 모자를 멋지게 쓰신 할아버지 한분이 뒤따라 들어오신다.

육감적으로 친구가 말한 적이 있는, 바로 옆집 그 할아버지 일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페라를 틀어놓고 들으신다는...

몇층으로 가세요? 하니 아니나 다를까 3층이라고 하셨다.

아, 네.. 저도 3층에 가는데요...

저... 복도가 조금 시끄러우시더라도 잠깐 양해해 주세요...

지은이 엄마 생일이라서요... 축하 좀 해주려고 하는데요... 좀 놀라게 해주려고요...

그러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바로 나가서 허둥지둥, 누가 볼새라,

꽃을 앞에 놓고 그 옆에 케익을 놓고, 땅바닥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놓고 막 열려는 순간...

" 여기는 4층인데요..." 할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아니 평소에 맨날 4층에 내려서 한층 걸어 내려가던 것을 수백번 했을터인데,

그 날 남의 집 앞에서 식전 아침부터 고성방가한다고...

신나게 해피버스데이...어쩌고저쩌고 연주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문을 쓰윽 열고, " 아니...누구세요? 이게 왠 시끄러운..."

이랬을 것을 생각하자 등이 오싹했다...!

이런 것을 두고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는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할아버지가 그날, 그시간, 나와 함께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그 운명.

나는 정말 감개무량할 정도로 감사해하며 다시 다 싸들고 할아버지 뒤를 부리나케 쫓아 내려갔다.

할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 해브 어 굿 파티" 하시며 옆집으로 들어가셨다.

휴우... 한 숨 들이쉬고,

내 바이올린 꺼내서 닫혀진 문 앞에서 해피버스데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서 문이 열리며, 내 친구... 그 예쁜 얼굴이 나오며...

눈이 휘둥그레지다가, 남편과 딸이 뒤따라 나오며 소리를 지르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변주곡까지 다 마치고 나서보니 친구는 울고있고...

가족은 와아.. 이렇게 로멘틱한 생일은 처음이야...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내 친구 볼에 뽀뽀를 해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토록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친구의 존재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눈믈이 났다...

가위 바위 보 놀이에서부터, 소꼽장난 시절부터, 사춘기 소녀시절, 여대생 시절에도

매일같이 만나도 헤어지길 싫어했고, 서로 너때문에 연애도 못해봤다고 핀잔을 주고받는 친구이다.

서로 다른 학교,다른 과이라서 나는 그 친구의 국문학 강의를, 그 친구는 내 음악사 시간을 끼어앉아 듣기도 했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내 연주에 와서 축하해주지만, 지금도 뭐가뭔지 모르겠다... 한다.

나의 음악적 지상목표는 언젠가 이 친구를 나의 음악으로 감동시키는 그것일 것이다.

그 날을 향해 매진 할 것이다.

지금도 일곱 살 그 때처럼 장난스럽게 놀고,

서로 너무 달라서 이해 할 수없던 것들도 진심으로 인정해 주게 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냥 만나서 앉아만 있어도 다 위로받게되는 그 친구를 위한 복도에서의 깜짝연주...

사랑의 연주...

이런 마음의 선물로 드리는 그런 연주를 늘 하고싶다.

이번 연주회는 시기스발드 선생님의 희생적인 사랑,

벤자민의 초인적인 스케줄,

윤경씨의 정성이 가득한 연주와

기획사의 희생적인 노고가 함께한 가운데

이 모두를 조화롭게 울려퍼지게 한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모두를 많이 행복하게했던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2011.10.16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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