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올 때마다 여러 분야에서 빠르게 변한 모습에 놀라곤 한다. 어느 새 높이 솟아 올라 간 새 빌딩들 뿐 아니라 새로운 단어들, 짧게 줄인 말들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이다. 

90년 대 초까지는 패션 스타일도 요즘에 비해 훨씬 더 획일적이어서 여름 철에 한번씩 귀국 할 때마다 모든 여성들의 입술 색깔이 똑 같이 달라져 있기도 했는데 어느 해엔 시내에서 보이는 모든 여자들이 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어서 흠칫 “무셔버…;; “ 했던 기억도 있다. ㅎㅎ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 한 가지는 “호칭”의 문제다. 오래 전엔 가게나 식당등의 종업원에게 “언니!” 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이모!”라고 하길래 처음엔 정말 친척인 줄 알았다. 그 뒤로 호칭마다 “..님” 을 붙여 부르다가 요즘엔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본다. 여러가지 호칭 중에 이 “선생님” 만큼은 적응하기가 정말 어렵다. 내 사랑하고 존경하던 선생님들의 모습과 교차되면서 “ 왜 당신이 나의 선생님…?” 이런 생각이 들어 불편해서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다. 모두에게 그냥 이름 하나면 통하는 나라에 거주해 온 지 35년이 넘어가다보니 그저 이름 하나로 부르고 싶고 그렇게 불려지는 것이 편할 뿐이다. 타이틀에 연연하게 만드는 허례를 누가 이렇게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 가며 계속 부추기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상 서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는 어렵다고 해도 서로 적당히 존중해주는 정도에서 종사직종 뒤에 “님” 자 정도를 붙이는 것으로 계속 사용했다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 집에 와서 일 해 주시는 분에게 “아줌마” 라고 부르다가 어느 날부터 이름을 불러드리기 시작했다. “효선씨”가 된 아줌마는 그 날부터 내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함께 시장에 가거나 엄마의 심부름 을 갈 때마다 나는 효선씨를 내가 좋아하는 카페로 데려가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그녀가 나와 동갑이고 영어 공부를 매일같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가 기거하는 어머니 집의 이층 청소를 해주는 대신 내 안락의자에 앉아 내가 보는 영어로 된 영화나 뉴스를 보게 하고 나는 그녀의 옆에서 걸레질을 하곤 하는데 그녀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준다. 그녀는 생활 속의 지혜가 많아서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주고 또 얼마 전에는 그녀의 고향 시골 밭에서 캐 온 야채들을 내 작은 베란다에 심어 내가 원하던 작은 온실같은 공간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아줌마가 효선씨가 된 이후 적막한 시간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좋은 친구를 얻은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그냥 타이틀 없는 이름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연주회 때에도 장황하고 위화감드는 프로필 대신 “오늘의 연주가 제 프로필입니다” 라고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요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무례하지 않고 상대방을 최대로 높여 드리는 호칭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게된다. 동시에 효선씨가 그냥 아줌마로 남아있었다면 우리의 사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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